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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쇠리, 우리 현대사와 영욕을 함께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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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기사입력| 기사입력 06-02-06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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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1일 오전, 음력 5월 5일 단오절을 맞아 오쇠리 마을회관 옆 공터에서는 단오맞이 오쇠리 주민 한마당잔치가 열렸다. 오쇠리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이날 행사를 준비한 주거복지연대 관계자들, 그리고 축하공연 출연진과 방문객을 모두 합해도 100명이 채 안되는 조촐한 행사였지만 이날의 행사는 초여름의 햇살만큼이나 뜨거운 소망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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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패와 함께 마을 곳곳을 돌아온 길놀이에 이어 주민들의 안녕과 복을 비는 기원제를 지내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속에는 저마다 세월의 아픔과, 확실치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것은 지나온 반 세기 동안의 오쇠리 마을의 영욕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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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구 원종동을 가로지르는 원종로를 따라 오정대로 고가 아래를 통과하면 버드나무가 늘어선 길을 지나 김포공항에 이르기 직전에 낡고 허물어진 주택들이 늘어선 길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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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과 원종동, 그리고 오정동으로 통하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오쇠삼거리가 있고 그 삼거리 한가운데에는 지붕위에 폐타이어와 검은 차양막으로 전쟁터의 요새처럼 막아놓은 콘크리트 슬라브 건물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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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이 삼거리에는 수많은 차량들만이 바삐 지나다니고 있고 하늘 위에는 거대한 비행기들이 머리에 바로 닿을 듯 굉음을 울리며 낮게 스쳐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옛날 번성기때 오쇠리의 농협지소로 쓰였던 이 건물이 오늘날 세입자 대책위원회 사무실로 쓰이기까지의 과정은 바로 우리나라 현대사의 그늘진 부분을 그대로 나타내는 상징적인 현장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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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서구와 부천시 오정구의 경계지점,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오정구 고강1동에 자리한 오쇠리(五釗里)는 옛날 弩(쇠노)를 만들던 사람 다섯 명이 살았다 해서 붙여진 마을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마을사람들에게 밖오시라는 이름으로 불려오던 이곳은 조선지지 자료에 외오쇠리(外五釗里)로 표기되어 영조(英祖) 이래로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 주화곶면(注火串面)에 속해 있었으며 1914년 부천군(富川郡)이 신설되면서 오정면(吾丁面) 외오쇠리가 되었다.

해방후 미군의 주둔으로 인해 마을이 급속히 커지면서 오쇠리 삼거리 일대의 안오쇠리와, 대장동 지역으로 뻗은 공장들이 밀집한 밖오쇠리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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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도 잠시 김포군에 속해있다가 다시 1975년도에 부천시 성지동으로 복귀했고, 1989년에 성지동을 원종동과 고강동으로 분리할 때는 원종동에 속해있었다. 그러다가 1991년 오정구 고강동을 고강1동, 고강2동으로 분할하면서 고강1동으로 합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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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쇠리는 일제시대에 건설된 김포비행장의 역사와 함께 부침을 거듭해온 곳이다. 김포군 방화리 들판에 1939년 일제의 군용활주로가 건설되면서, 여느 시골마을처럼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살던 오쇠리 주민들의 생활도 그 영향권에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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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미군의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되면서 인근에 미군부대가 주둔하게 되자 점차 미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상가와 유흥업소, 그리고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주택들이 늘어나 그 주변에 기지촌이 형성되었고 이로 인해 60년대 전후로는 부천군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한창때 3곳의 클럽을 비롯한 수많은 유흥업소들에 미군과 타지역 주민들까지 몰려와 불야성을 이루던 오쇠리였지만 70년대 말 미군부대가 타지방으로 이전하게 되자 기지촌이 급속히 해체되면서 주민들도 이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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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오쇠리는 다시금 평범한 시골마을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듯 했지만 오래전인 1958년에 이미 국제공항으로 확대된 김포공항의 항공기 운항이 해가 갈수록 급속히 늘면서 이로 인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항공기의 이착륙에 따른 소음과 진동으로 생활환경이 악화되고, 건축물 고도제한 등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등으로 인해 1,000여 세대에 이르는 오쇠리 주민들의 불만이 점차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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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87년 4월에 오쇠리 지역을 김포공항 항공기소음피해 1종지역으로 결정하고 서울지방항공청과 부천시가 오정구 작동에 이주단지를 조성함에 따라 98년 3월 268세대의 건축주에 대해서는 분양이 완료되었고, 세입자 700여 세대 중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자 및 주거대책비 보상에 합의한 주민들은 제각기 오쇠리를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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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갖가지 사정으로 확실한 주거대책을 보장받지 못한 세입자 120여 세대는 이후에도 오쇠리에 남아 낡을대로 낡은 집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며 부천시와 항공청을 상대로 지속적인 민원제기와 집단시위 등을 통한 현실적인 보상과 이주대책을 요구해왔고 그중 60여세대가 오늘날까지 농사와 노동일 등을 하면서 오쇠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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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년간 공공기관의 재개발 추진과 세입자들의 생존권 사수라는 두개의 바퀴가 팽팽히 맞서서 제대로 된 생활환경이 유지되지 못하는 동안 남아있는 주민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허물어져가는 집을 건축규제로 인해 제대로 수리도 못한 채 십수년 간 불편한 주거환경을 감수하고 생활하는 동안 2002년 11월에는 부모가 일터로 나간 사이에 낡은 가옥에 화재가 발생하여 네 명의 어린이가 숨지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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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서울과 부천시 경계지역의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던 오쇠리는 우리나라의 현대화가 진행되온 190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세월동안 부천의 어느 지역보다 큰 변화의 바람을 맞으며 부침을 거듭해왔고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오정구의 중심 번화가로 자리 잡은 원종동과 고강동, 새로운 아파트촌으로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오정동을 이웃에 둔 오쇠리는 현재 15만여 평의 골프장 건설예정설이 떠도는 가운데 차츰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다...

*** 2005년 10월 부천문화원 발행 [부천문화] 제72호에 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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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대책위원회 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어린이 공부방 [복음자리]에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쓰는 오쇠리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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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쇠리 길가의 밭두렁에서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앉아있는 곰인형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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